백담사는 해마다 80만명이 다녀가는 관광명소입니다. 서울에서 하루 여행으로 적당합니다. 하지만 조금만 일찍 집을 나서면 영시암까지 다녀 올 수 있습니다. 등산복 없어도 됩니다. 가벼운 차림이면 됩니다.
1. 탐방소요시간
백담사 둘러보기: 1시간
영시암 트레킹: 3.5㎞(1시간 20분)-왕복 2시간 40분
영시암 둘러보기 및 휴식: 30분
총 소요시간 4시간 10분
2. 백담사 셔틀버스 주차장에서 백담사
거리: 7㎞ / 시간: 18분 / 방법: 셔틀버스
백담사 셔틀버스 매표소 입구
운행빈도: 30분 당 1대
운행요금: 편도 2,500원
백담사 셔틀버스 승강장
3. 백담사 둘러보기
일주문
사찰에서 일주문은 글자 그대로 기둥이 하나로 돼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일주는 하나의 마음 일심을 뜻한다고 합니다. 백담사ㅏ 일주문은 내설악 백담사라고 쓰여 있습니다.
춘성대선사비
춘성대선사는 만해 한용운 선사의 수제자입니다. 용대리 사람으로 본명은 이창림으로 열세살에 백담사에서 만해 한용운 선사로부터 계를 받았습니다. 1977년 화계사에서 법랍 74세로 입적했습니다. 욕쟁이 스님으로 유명합니다.
수심교
백담계곡을 건너 백담사에 이르는 다리입니다.
금강문
일주문을 들어서 두번째 맞이하는 문입니다. 흔히 사천왕상이 있어서 천왕문이라고도 합니다. 백담사는 금강역사상이 있어서 금강문이라고 하는가 봅니다.
불이문
사찰에 세번째 있는 문이 불이문입니다. 온갖 이분법으로 분별과 대립을 떠난 부처님의 경지를 말합니다. 백담사에는 불이문이라 쓰여있지 않고 백담사라고 쓰여 있습니다.
백담사 경내
범종루
불이문을 들어서 오른쪽, 만해기념관 방향으로 있습니다. 범종루에는 범종을 비롯해서 법고, 운판, 목어가 있습니다. 이를 사물이라고 합니다.
범종: 육계 33천 모든 일체중생의 제도에 그 목적이 있다고 합니다.
법고: 예불을 시작할 때 칩니다.
운판: 날짐승을 제도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목어: 물에 사는 짐승을 제도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법화실
백담사 종무소가 자리를 잡고 있는 요사채입니다.
화엄실
백담사 요사채. 가운데 방이 고 전두환 전 대통령이 머물던 방입니다.
극락보전
백담사는 극락보전입니다. 무량수전과 함께 아미타여래를 모시는 사찰입니다.
극락보전 가운데에는 아미타여래가 있고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협시합니다.
백담사 극락보전 곽암 심우도
십우도에는 보명의 목우도와 곽암의 심우도가 있습니다. 백담사를 보고 오른쪽으로 돌면 보입니다. 이곳은 곽암의 심우도가 그려져 있습니다.
산령각
우리나라 불교는 전통신앙과 융합해 발전해서 산신각이라는 전각이 있습니다. 부처님을 모신 건물에는 전자를 붙이고 산신을 모신 건물에서는 각자를 붙인 것으로 봐서 산신이 부처보다 한 수 아래로 평가했나 봅니다.
감로수
도리천에 있는 달콤하고 신령스런 액체를 말한다고 합니다.
나한전
만해당
만해흉상과 시비
만해기념관
김시습 시비
허응당 시비
만해교육관
만복전
농암실
백담사 경내에 있는 찻집입니다. 차를 한잔 나누며 걸음도 쉬고 명상에 잠기기도 합니다.
만해적선당(매점)
백담사 방문을 기념하는 기념품을 판매합니다. 대청봉에서 내려오는 힘든 등산객을 맞이하기 위한 아이스크림도 판매합니다.
4. 영시암 둘러보기
영시암을 숙종 35년(1709년) 안동 김씨 가문의 삼연 김창흡 선생이 창건했습니다. 최춘금 처사의 호환으로 떠나면서 폐사가 됐습니다. 그후 삼연 김창흡 선생은 다시 설악산에 들어 갈역정사를 지으셨습니다.
부속 건물로 농환정, 완심루, 무청정과 멸경암 등이 있을 정도로 규모가 컸습니다. 원래는 조원동 기슭에서 고명봉을 바라보고 건립됐다고 합니다. 고명봉은 백두대간 저항령과 마등봉 사이에 있는 봉우리 입니다.
현재 중건은 도윤스님이 건립했습니다.
도윤 스님 부도비와 부도탑
도윤 스님의 부도비와 부도탑은 영시암에 거의 다다르면 처음 만나게 됩니다. 법명은 설봉이고 속명은 안동 김문의 이름은 도윤입니다.
도윤스님은 60년대 내설악에 들어와 평생을 보냈습니다. 안동 김씨 가문의 당대 최고의 서예가이며 5현 중에 일중 김충현, 여초 김응현 선생의 도움으로 영시암을 중건하고 오세암과 봉정암도 중건을 했습니다.
설봉 도윤스님 생전 모습
도윤스님이 6.25 전쟁 이후 영시암, 오세암, 봉정암 중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영시암
영시암은 유학자인 삼연 김창흡 선생께서 창건했습니다. 때문에 암자 이름도 불경이 아닌 시경에서 왔습니다. 시경 위풍 고반이 출전이라고 합니다.
考槃(고반)
考槃在澗 碩人之寬(고반재간 석인지관)
獨寐寤言 永矢弗諼(독매오언 영시불훤)
산 개울에 숨어 살 집을 지으니 큰 사람의 너그러움이다
홀로 자고 깨어 읊조리니 속이지 않게노라 영원히 다짐 하노라
考槃在阿 碩人之薖(고반재아 석인지과)
獨寐寤歌 永矢弗過(독매오가 영시불과)
언덕위에 숨어 살 집을 지으니 큰 사람의 아름다움이다
홀로 자고 깨어 노래하니 허물 없으리라 영원히 다짐 하노라
考槃在陸 碩人之軸(고반재아 석인지과)
獨寐寤宿 永矢弗告(독매오가 영시불과)
뭍에다 숨어 살 집을 지으니 큰 사람의 지위이다
홀로 자고 깨어 지키니 말하지 않겠노라 영원히 다짐 하노라
시경집주에 考槃(고반)에서 고는 이름을 말하고 반은 즐기다를 이른다고 합니다. 이로써 은거할 집이라고 하는데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해 옮기기만 합니다.
영시를 영원히 맹세하다로 보는 이유는 矢는 時라고 봅니다. 때문에 세월이 쏜 살 같다는 말을 합니다. 옛날 중국에서 회맹을 할 때 화살을 꺾어 놓고 소와 양의 피를 입에 바르고 했다고 합니다.
날아가는 화살이 꺾였으니 이는 시간의 멈춤이고 회맹의 약속은 여기서 끝이라는 의미가 하닌가 상고합니다.
영시암 동쪽 요사채
많은 등산객들이 이 요사채 마루에 앉아 쉬어 가곤 합니다.
영시암 범종루
영시암 뜰에서 내다 본 영시암 범종루 입니다.
영시암 서쪽 요사채
영시암 서쪽 요사채입니다. 이곳은 공양실과 세면장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영시암 뒷편 비로전
비로전은 비로자나불을 모신 법당입니다. 비로자나불은 부처님 가운데 최고의 경지에 이른 분입니다. 기독교로 말한다면 성령에 가깝다 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산 이름 가운데 비로봉은 가장 높은 봉우리에 붙여지는 이름입니다.
맨 아랫쪽 요사채
영시암 맨 아랫쪽, 해우소 뒷편 요사채 입니다. 아마도 이곳이 공양간이 아닌가 합니다.
영시암 앞 탐방로
영시암 앞 탐방로입니다.
영시암 산신각
영시암 뒷편 언덕 위에 산신각이 있습니다.
5. 지도로 안내하는 백담사+영시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