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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걷기

대표적인 관음성지 설악산 오세암-전설을 알면 종교가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by sire's tarvel 2022. 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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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싣는 차례

1. 오세암 개칭 전거

2. 오세암과 인연 있는 인물

3. 오세암 전각 돌아보기

4. 지도가 안내하는 오세암

 

1. 오세암 개칭 전거

오세암은 관세음보살 성지로 유명합니다. 전설에서 관음과 관련이 있습니다. 때문에 신라 선덕여왕12년(643)자장율사가 관세음보살을 친견하고 창건 당시에는 관음암이었습니다. 뒤에 오세암으로 바뀌었습니다.  

 

노산 이은상 선생께서 1933년 9월 30일부터 10월 8일까지 설악산을 답사하고 쓴 설악행각에 의하면 두개의 전설이 내려오고 있습니다.

 

오세암 오세선원 본당
오세선원. 오세암 본당. 오세동자 성불터로 유명하다.

 

설정(雪淨)선사 오세 조카

조선 인조 21년(1643) 설정(雪淨)선사가 중건하고 오세암이라 바꾸고 그 까닭을 무진자의 사적기를 인용해 써 두었습니다. 바로 불교적 관점에서 본 것입니다.

 

배경은 고려시대입니다. 설정(雪頂)조사라는 스님이 다섯살 난 조카와 함께 생활을 했습니다. 한겨울에 조카를 남겨 두고 양양으로 탁발을 떠났습니다. 무서워하는 아이에게 관세음보살을 외우면 된다고 일렀습니다.

 

저녁에 돌아 오려고 했지만 눈이 너무 내려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이듬해 봄에 눈이 녹아 돌아와 보니 조카가 살아 있었다고 합니다. 연유를 물어 보니 어머니가 와서 젖도 주고 밥도 주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관음봉에서 여인이 내려와 동자를 어루만지고 보리기를 주고 파랑새가 돼서 날아 갔고 조카는 그 자리에서 견성득도했다는 이야기 입니다.

 

오세 신동 김시습과 인연

다른 하나는 유교적 관점입니다. 세조 2년(1456) 사육신의 난의 실패로 죽임을 당한 사육신의 시신을 김시습이 노량진에 수습해 사육신 묘를 만들고 난 후 운둔과 방랑생활을 이어 갔습니다. 

 

그 가운데 관음암에서 생활한 것이 인연이 돼 오세암으로 개칭했다고 합니다. 김시습이 5살에 사서를 통달한 오세신동을 불려졌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다만 김시습은 유학자라기 보다 유불을 넘나들었습니다.

 

탐방시간 안내

백담주차장에서 백담사: 20분

백담사에서 영시암(3.5㎞): 1시간 20분

영시암에서 오세암(2.5㎞): 1시간 20분

오세암에서 백담사(하산길): 2시간

백담사 백담주차장: 20분

 

이동 총소요시간: 5시간 20분

 

2. 오세암과 인연 있는 인물

김시습(1435~1493)

생육신 가운데 한 분.  오세에 사서를 통달한 신동이라고 합니다. 세종대왕께서 불러 은근히 칭찬을 하셨다고 합니다. 사육신 난 후 주검을 수습 암매장 했습니다. 이후 방랑과 은둔생활을 했습니다.

 

금오산 용장사에서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를 저술했습니다. 그의 이름 시습은 논어의 첫 문장인 학이시습지 불역열호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김시습 연보에 의하면 설악산에 머문 시기는 성종22년(1491) 무렵입니다.

 

다만 백담사에 김시습 시비가 있습니다. 시제는 만의(萬意). 그런데 이 시는 매월당시집 권지9 유관서록에 있습니다. 관서지방을 유람하면서 쓴 시입니다. 유관서록은 세조 4년(1458)과 6년(1460)에 썼습니다.

 

萬意(만의)

 

萬壑千峯外(만학천봉외) 겹겹히 이어진 산봉우리 밖에

孤雲獨鳥還(고운독조환) 구름 하나 외로운 새 돌아오는구나

此年居是寺(차년거시사) 올해는 이 절에서 머물면 되는데

來歲向何山(내세향하산) 내년에 어느 절에 의탁하려나

 

風息松窓靜(풍식송창정) 바람이 멈추니 승방창문 조용하고

香銷禪室閑(향소선실한) 향 사라지니 선방은 한가하구나

此生吾已斷(이생오이단) 이번 생에 나는 이미 끝나가는데

棲迹水雲間(서적수운간) 살아 온 자취는 물과 구름 속에 있구나

 

그런데 이 시가 왜 백담사에 있는 지는 모르겠습니다.

※ 해석은 제가 했기에 시비와는 다를 수 있습니다.

백담사 김시습 시비 만의
백담사 김시습 시비

 

보우대사(1509~1565)

오세암은 설정이 중건하기 96년 전인 명종3년(1548)에 보우(普雨)가 관음암으로 중건해 수도한 도량입니다. 보우는 숭유억불을 국시로 하고 있는 조선의 불교 중흥기를 이끌었던 고승입니다. 

 

문정왕후 수렴청정기에 봉은사 주지를 역임하는 등 선종을 크게 일으켰습니다. 보우의 제자로 휴정과 유정 등 고승이 배출돼서 법맥을 이었습니다. 고한(高閑)이라는 시비가 경내에 있다.

 

高閑(고한)

 

庵在雲重處(암재운중처) 암자는 구름 겹겹 싸인 곳에 있어도

從來不設扉(종래불설비); 본디 사립문을 만들지 않는다네

臺森含晩翠(대삼함만취) 누대에는 녹음이 지쳐있고

庭菊帶斜暉(정국대사휘) 뜰에 국화는 석양을 두르고 있구나

 

木落經霜菓(목락경상과)나무는 매달린 서리맞은 열매 떨어뜨리고

僧縫過夏衣(승봉과하의)중은 지난 여름 옷 꿰메고 있다네

高閑吾本意(고한오본의)담백한 한적함이 내 바람이라

吟賞自忘歸(음상자망귀) 읊조리는 즐거움에 스스로 돌아갈 일 잊고 있구나

 

※ 해석은 제가 했기에 시비와는 다를 수 있습니다.

백담사 허응당 보우 시비
백담사 허응당 보우 시비.

 

남호율사(1820~1872)

조선후기 순조때부터 고종때까지 고승입니다. 속명은 정영기입니다. 철원 보개산에서 계를 받았습니다. 1855년 봉은사 화엄경판각 작업에 도화주로 참여했습니다.

 

이때 인연을 맺은 미망인 박여련화로 인해 고통을 받던 나머지 합천 해인사에서 대장경 두질을 얻어 오세암과 상원사 중대암에 봉안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고종 때 영의정을 지닌 바 있는 이유원의 문집 가오고락 가운데 대장경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大藏經(대장경)

 

人在西天法苑塲(인재서천법녹장) 몸이 서천에 있을 땐 법화녹원에 노릴었고

夢魂長濕芸花香(몽혼장습운화향) 꿈은 혼이돼 운화를 적시는 향이 되고파서

板雕靈異遙伽嶽(판각령이요가악) 판각 영험하고 기이해 멀리 가야산에 있는데

卷帙完全庋正陽(권질완전기정양) 대장경을 완전 갈무리해 금강산 정양사에 두었더니

五十凾成充一室(오십함성충일실) 모두 오십 상자라 방 한칸의 채우는 구나

七千編富演三藏(칠천편부연삼장) 칠천편에 경, 율, 론을 자세히 밝혔으니

沙門功德唐皇帝(사문공덕당황제) 남호율사 공은 당태종의 덕이라

萬物終歸種福鄕(만물종귀종복향) 만물은 끝내 씨앗으로 돌아가 마을을 복되게 하네

 

※ 해석은 제가 했기에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만해선사(1879~1944)

3.1 만세운동 민족대표 중 한분입니다. 속명은 한용운. 젊은 나이 동학에 참여 했다가 실패한 후 고향 홍성을 떠나 오세암에서 승적에 들었습니다. 오세암에서 불후의 명작 님의 침묵을 저술했습니다.

 

특히 건봉사말사사적기와 십현담을 주해함으로써 불교사에 큰 획을 그었으며 불교 유심론으로 유명합니다. 님의 침묵에서 님은 서여련화라고 하는 여인이라는 설이 그의 평전에 실려 있습니다.

 

만해 오도송

 

男兒到處是故鄕 (남아도처시고향) 사나이는 도처가 고향이건만

幾人長在客愁中 (기인장재객수중) 몇이나 고향을 찾아 오래 헤메이었던가

一聲喝破三千界 (일성게파삼천계) 깨달음의 소리 우주에 우려 퍼지니

雪裡桃花片片紅 (설리도화편편홍) 눈 속에는 복숭아 꽃잎 조각조각 붉구나

 

※ 해석은 제가 했기에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백담사 만해 한용운 흉상
백담사 만해 한용운 흉상. 곁에 시비는 나룻배와 행인이라는 시비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3. 오세암 전각 돌아보기 

오세암 입구

예전 오세암 입구는 문수동과 보현동 사이입니다. 이곳은 오세암을 옆으로 들어가는 꼴이라 정면에서 올 수 있도록 범종루 밑으로 출입로를 만들었습니다.

오세암 입구

 

천진관음보전

천진관음보전에는 오세암 주불인 관세음보살이 모셔져 있습니다. 

오세암 천진관음보전

불경을 옮긴 소 조각상

남호율사가 대장경을 옮길 때 소 등에 불경 상자를 얹어 옮겼다고 합니다. 이를 기리기 위해 소를 조각했다고 합니다. 현재 천진관음보전 앞에 있습니다. 소의 모습은 고개를 돌리고 앉아 쉬는 모습입니다.

 

오세암 천진관음보전 앞 소 조각상 왼쪽.
오세암 천진관음보전 소조각상 왼쪽
오세암 천진관음보전 소 조각상 오른쪽.
오세암 천진관음보전 소 조각상 오른쪽.

오세암 옛 대장전

남호율사가 대장경을 인경해 봉안하기 위한 대장전을 지었습니다. 현재 천진관음보전 자리입니다. 이층으로 돼 있었는데 1층은 원통전이고 이층이 대장전입니다.

 

사진의 동그라미는 위치를 비정하는데 중요한 근거가 되는 바위입니다. 이 건물은 6.25 전쟁으로 불타서 없어졌습니다.

오세암 옛 대장전
오세암 옛 대장전

오세암 범종루

오세암 범종루

범종루에서 본 천진관음보전 옆 광장

범종루에서 본 천진관음보전 옆 광장

종무소 및 팔만대장경 홍보관

종무소 및 팔만대장경 홍보관은 보기에는 단층이지만 밑으로 2층이 더 있어 실질적으로 3층 건물입니다.

종무소 및 팔만대장경 홍보관

시무외전

중생들의 두려움과 걱정을 없애주는 곳입니다. 천수관음보살이 봉안돼 있습니다. 관음보살은 33가지 형태로 모습을 드러내 33관음이라고도 합니다. 관음보살과 함께 3천불상이 모셔져 있다고 합니다.

오세암 시무외전

오세암 감로수

오세암 감로수

오세암 동자전

동자전은 여느 사찰에는 없이 오세암에만 있습니다. 아마도 오세득도 설정조사의 조카를 기리기 위함인가 봅니다. 

오세선원 오르는 길

동자전 오른쪽 길은 오세선원으로 이르는 길입니다.

오세선원으로 오르는 길

오세선원

옛 오세암 본찰입니다. 이곳에서 오세동자가 성불을 했으며 보우대사가 득도를 했고 만해선사가 님의 침묵을 집필했습니다. 지금은 스님들이 생활하고 있습니다.

오세암 오세선원

관음보살 입상

동자전 왼쪽에 최근에 설치한 관세음보살 입상입니다. 

오세암 관세음보살상

관음보살 입상에서 건너다 본 용아장성

관음보살 입상에서 건너다 본 용아장성입니다. 아침 햇살을 받아 고스란히 제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오세암 산신각으로 가는 길

오세암 산신각

오세암 산신각

오세암 오른쪽 끝

오세암 오른쪽 끝에는 마등령 삼거리와 봉정암으로 가는 길이 있습니다. 이곳는 오세암 해우소가 있습니다. 그리고 3층으로 보이는 오세암 종무소와 대장경 홍보관이 보입니다.

 

4. 지도가 안내하는 오세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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